영광 한빛원전 2호기에서 황산 191리터가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고창지역 주민들의 불안과 분노가 다시 고조되고 있다. 고창군 전역이 방사선비상계획구역(30킬로미터 이내)에 포함된 상황에서 발생한 이번 사고는, 원전 안전성과 노후화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과 함께, 인근지역에 대한 구조적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고는 지난 6월14일 오후 5시40분경 발생했다. 한빛2호기 터빈건물 내 황산저장탱크에서 황산이 바닥으로 흘러나왔고, 복수탈염설비 황산주입펌프 입구밸브 연결부 볼트 1개가 손상된 것이 원인으로 파악됐다. 누출된 황산은 191리터에 달했으며,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화학 및 특수구조대 소방차 등 11대(17명)가 출동해 현장을 정리하고, 원전 측은 이후 주입펌프를 교체했다.
문제는 사고 자체보다 그 대응 과정과 맥락에 있다. 사고 발생 후 원전 내부 경보는 작동했으나, 현장 확인과 영산강유역환경청 신고까지 2시간 39분이 소요됐고, 외부 소방대가 출동하기까지는 3시간 30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고창군을 비롯한 인근 주민들이 지적하는 대목은 바로 이 ‘경보-확인-조치’ 간의 지체와 대응 체계의 불투명성이다. 방사성 물질이 아닌 일반 유해화학물질 사고였다고는 하나, 핵시설 내부에서 발생한 사고인 만큼 더욱 엄격한 기준과 즉각적 대응이 요구된다는 것이 지역사회의 공통된 시선이다.
사고의 발생 원인이 ‘주입펌프 연결볼트 손상’이라는 점은 또 다른 불안을 키우고 있다. 한빛2호기는 1987년 6월에 운전을 시작한 설비로, 2026년 9월에 설계수명이 만료된다. 그럼에도 한국수력원자력은 2023년부터 수명연장 절차를 추진하고 있다. 주민공청회가 파행되고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반발하는 등 과정 전반에서 갈등이 누적되고 있는 가운데, 황산 누출 사고는 ‘노후 설비의 위험성’에 대한 구체적 경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고창군은 한빛원전 소재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 지역이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에 포함돼 있으며, 방사능 영향권에 있는 현실을 꾸준히 지적해 왔다. 사고 시 군민의 피해 가능성은 상존하지만, 원전 인근 지역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각종 규제에 묶여 있고, 정작 ‘지역자원시설세’와 같은 재정 보상은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구조적 문제로 지적돼 왔다. 고창군 안전총괄과(과장 최주화)는 “위험은 공유하면서도 지원은 단절된 현행 제도는 불합리하다”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인근지역 전체를 고려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고창군한빛원전범군민대책위원회(위원장 조규철 군의원) 역시 6월18일 한빛원전 1·2호기의 폐쇄를 강력히 요구했다. 대책위는 “최근까지 한빛원전에서 격납건물 배기 중 방사선감시 미실시, 계획예방정비 중 비상디젤발전기 자동 기동, 터빈건물 공기압축기 외함 화재, 베어링 모조품 사용 등 이어지는 사고가 안전불감증을 드러내고 있다”면서, “특히 이번에 황산이 누출된 2호기는 노후화의 상징”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부지 내 저장을 반대하며 군민 직접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한빛원전 측은 사고 수습과 펌프 교체를 완료했으며, 원자력안전위원회 한빛지역사무소도 현장 확인과 한수원의 원인 분석에 따른 조치사항을 점검할 계획이다. 그러나 사고 발생 후 신고까지의 지체, 장비 노후화, 누적된 사고 이력 등은 단순한 기술적 대응을 넘어, 원전의 구조적 운영 방식과 정책 전반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수십 년간 핵발전소를 곁에 두고 살아온 고창 주민들은 이번 사고를 통해 “더는 안전을 신뢰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아니면 집단행동을 취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다시 지역사회 앞에 놓여 있는 지금,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더 이상 유예할 수 없다. 반복되는 사고 앞에서 침묵은 선택이 될 수 없고, 안전은 누군가의 약속이 아니라 스스로 지켜내야 할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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