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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속에서도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정읍의 두 선비, 안의와 손홍록의 헌신이 433년의 시간을 넘어 현장에서 다시 조명됐다. 정읍문화원은 6월22일 내장산 우화정 특설무대에서 ‘국가유산지킴이의 날’을 맞아 ‘조선왕조실록 이안 기념행사’를 열고, 이들의 숭고한 실천을 지역사회와 함께 기렸다. 정읍시, 내장산국립공원사무소, 정읍교육지원청이 후원했다.
이날 기념행사는 조선왕조실록 전주 사고본이 임진왜란 당시 내장산 용굴암으로 이안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관청의 지원 없이 사재를 들여 유산을 지켜낸 두 선비와 마을 주민들의 노력을 기념하기 위한 자리였다. 실록은 1592년 6월22일 안의와 손홍록이 마을 주민 20여 명과 함께 내장산 용굴암으로 옮기며 화마로부터 보존됐고, 이후 1년간 은적암과 비례암 등지를 거쳐 온전히 지켜졌다.
기념식에는 이학수 정읍시장과 박일 정읍시의장, 김영수 정읍문화원장을 비롯해 시민과 관광객, 관내 초·중·고등학생 등 4백여명이 참석했다. 클랑앙상블의 연주와 청운사 향원 스님의 성악 공연이 함께 어우러지며 문화유산의 가치와 감동을 전했다. 행사 후에는 조선왕조실록과 어진을 품고 내장산 용굴로 향했던 433년 전 그날을 재현하는 ‘이안 행렬’이 진행됐다. 시민과 관광객이 참여한 이 재현 행렬은 실록을 지키기 위해 산길을 걸었던 선현들의 마음을 공유하는 체험의 장으로 꾸려졌다.
이번 행사는 지난해보다 예산을 늘려 행사 콘텐츠를 다각화했다. 실록 수호의 전말을 다룬 연극 무대와 안의·손홍록 선생의 삶을 조명하는 구성은 참가자들의 이해도와 몰입도를 높였다. 행사 전반에 걸쳐 정읍의 역사자산을 오늘날 공동의 기억으로 되살리는 문화적 접근이 시도됐다. 정읍교육지원청에서는 학생들이 역사를 쉽고 흥미롭게 접할 수 있도록 태조어진 관련 포토존, 관복 및 농민복 착용, 전통부채 만들기, 느린 우체통(엽서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했다.
이학수 시장은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내장산 자락에서 이런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려 뜻깊다”며 “오늘 하루만이라도 안의·손홍록 두 선비의 이름을 기억하자”고 밝혔다. 최용훈 교육장은 “조선왕조실록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소중한 문화유산이며, 정읍이 그 보존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지역민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만한 사실”이라며 “이번 행사를 통해 학생들이 지역의 역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정읍문화원은 조선왕조실록 이안의 날인 6월22일을 국가유산청이 ‘국가유산지킴이의 날’로 지정한 의미를 계승해, 해마다 지역문화행사로 운영하고 있다.
이번 행사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자 국보인 실록을 중심으로, 국가유산 보존의 의미와 민간의 역할을 함께 조명했다. 실록을 옮긴 물리적 경로를 따라, 당시 사람들의 판단과 행동을 공간적으로 복원하는 이안 재현 행렬은 정읍의 역사성과 문화의식이 만나는 장으로 기능했다. 문화유산의 보존이 제도나 시스템만으로는 완성되지 않으며, 공동체의 기억과 실천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이번 행사는 시민과 역사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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